4개월 전, 학교 첫날이 생각난다. 교실이 어딨는지 몰라 학교지도를 들고다니며 쉬는시간 5분동안 땀나게 뛰어 다니던 일, 사물함 좌물쇠 맞추는 법을  몰라서 그 날 수업 다 지각했던 일, 학교를 마치고 버스타려고 나왔는데 다 가버리고 없었던 일 등등. 버스를 놓치고 길도 모르면서 무슨 생각으로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했던건지, 무작정 걸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시 학교로 돌아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같고 웃기지만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잘 적응해서 생활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집에서 호스트 가족들과 말하는 것과 학교에서 수업 듣는게 왜 그렇게 다른건지. 학교만 가면 귀가 닫혔다. 수업을 해도 못 알아듣고, 숙제를 내줘도 뭐가 뭔지 몰라 매일 점수 깎이기 일쑤였다. 우리 학교만 있는건지, 여기 대부분의 시스템이 이런건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으로 언제든지 성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매일 그것을 보며 우울해 했었다. 처음 A라고는 수학과 미술 뿐이었다. 화학은 방학숙제를 내지 않아 D였는데, 개학하기 일주일 전에 온 나에게 방학숙제를 내라기에 반항심으로 안 냈더니 성적이 그 모양이었다. 그 얼마 안되는 방학숙제 점수가 왜 그리 큰지 ... 아무리 숙제를 열심히 해가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화학 선생님은 교환학생이라고 봐주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끝내는 포기했는데. 언제부턴가 학교에서 귀가 뚫리면서부터 화학이 너무 쉬워졌다. 간단한 외우기와 수학만 되면 되는 것이었다. 이제 성적표에서 D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5개의 A와 1개의 B뿐!!

미국에서 성적 잘 받는 것은 노력만 하면 정말 쉽다. 한국처럼 꼭 잘할 필요가 없다. 처음 몇달 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매일매일 숙제를 열심히 해가면 이거야 말로 '누워서 떡 먹기'다. 일주일에 몇번씩 test와 quiz가 있는데 매우 쉽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체육도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 번씩 퀴즈가 있는데 언제 있는지 몰라 공부를 안해서 성적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저번주에도 있는지 모르고 공부를 안했는데 시험 보기 몇 분 전, 나눠줬던 종이를 읽었다. 그 전에도 그런적이 많았는데 속독이 안 되서 한 페이지도 다 못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2페이지를 다 읽고 시험을 봤다. 속독 실력이 확실히 늘은 걸 알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자사전이 없으면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안 가지고 가는 날도 많아지고 꺼내기도 귀찮게 됐다. 모르는 단어가 아직도 많지만 없어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영사전만 쓰다가 영영사전을 쓰게된 계기가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시간에 단어목록을 준다. 그걸 외우고 퀴즈와 테스트까지 보는데 처음에는 모든 단어 아래다가 한국말로 뜻을 써놨다. 그 옆에 바로 영어로 풀이가 돼 있는데도 보지않고 한국말로만 외웠었다. 어느 날, 영어로 풀이가 돼 있는 것을 보았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고 전자사전 뚜들이기도 귀찮아 영어로 외우고 테스트를 봤다. 그 전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다. 그리고 한국 뜻으로 외우는 것보다 머리에 오래 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번주에 본 것은 100점을 맞았다. 확실히 말하면 21점 중에 24점을 받았다. 다른 애들 성적을 봤는데... 충격이었다. 모국어 시험인데 어떻게 8점을 맞을 수가 있는지... 대부분이 18점 이하였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단어 외우기가 이제는 점수를 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한국에서 제일 싫은 과목이 뭐냐고 물으면 생각할 세도 없이 '수학'이라고 대답했는데 여기서는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다. 수학시간에는 '동양인 수학 천재'로 불린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뭘 풀면 의심이 많았다. 한국에서 배운 공식으로 문제를 풀면 이런건 배운 적이 없다며 선생님께 가서 물어보겠다고 가서 갔다오면 하는 말은 '너가 맞았어'였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그 후로는 의심없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본다. 독일 학생들도 한국 학생들 만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며칠전에 큰 테스트를 봤는데 그 독일친구와 나만  100점을 맞아 재밌는 상황이 되었었다. 같이 앉는 친구들이 '니가 동양인이라서 나는 참 기쁘다'라고 장난을 치곤 한다.

한국에서 게으름 피우며 중간 성적을 유지하던 학생에서 여기 오니 모범생으로 변했다. 노력만 하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열심히 안 할까... (사실 대부분의 미국학생들은 그런 사실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그닥 열심히 하지 않는거 같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야자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지만 노력만 하면 안 될게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면 길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