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찬의 교환학생 수기 2 - 산뜻한 출발, 초반 적응기

2004년 9월 7일. 영원히 잊지 못할 이 날은, 내가 교환학생으로서 첫 걸음을 뗀 날,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살게 된 날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어머니, 누
나와 눈물의 작별을 하고 일본 나리타, 시애틀, 그리고 스포케인공항을 거친 긴 비
행끝에, 난 미국의 Montana라는 광활하고 드넓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운 주(州)의
가장 큰 도시인 Great Falls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 이메일로 인사는 주고받았지만,
사진으로조차 본 적 없는 나의 Host Family, Richard 와 Jennifer Mullinax, 그리고
내 귀여운 동생 Alton을 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긴
비행으로 지쳐있던 나를 쉴 수 있게 배려해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꽤 많은 대화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살게 된
동네는 몬태나주에서도 작은 시골 동네에 속하는, Great Falls 공항에서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진 Chester라는 마을이었다. 평생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갑자기 이런 시골마을에 오게 되어 어안이 벙벙하고 이상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보다 그저 처음 접해 본 환경이 마냥 신기하고 들떴었고, 도착한 날에 Richard와
함께 외식을 했을 때는, 시골의 정취에 흠뻑 취했었다.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내 교환학생 생활에 지대한 도움을 준 나의 Coordinator,
Patty Devries 아주머니를 만나 인사했다. 내 코디네이터였던 Patty는 아들 둘,
딸 하나의 어머니셨는데, 신앙심이 경건하고 항상 밝고 부드러운 성격과 넓은
이해심을 가진 아주머니셔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에게도 의지가 되고
많은 고민을 상담해주시는 분이셨다. 또, Richard의 직업이 목사였기 때문에,
교회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가졌었다. 따뜻한 인정과 함께 나와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기 때문에 나도 심적으로 편안하게 느끼고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튿날엔 내가 두 학기를 다닐 Chester High School에 가서
입학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학교 구석구석을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내 학교 커리큘럼을 짜는데 많은 상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교장선생님과
교직원분들의 친절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학교 시스템은 내 기대대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이미 짜여진 스케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목별로
학생의 수준과 흥미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현지
아이들에 비해 자연히 영어실력이 많이 부족했던 나는 원래 내 학년인 10학년보다
한 학년 아래인 9학년의 영어 수업을, 미국의 교육과정보다 앞선 수학공부를
한국에서 받아온 덕에 12학년의 수학수업을 신청했다. 그 외 운동에 관심이 많던
나는 체육(PE)과 미술(Art), 생물(Biology)과 Computer수업, 세계사(World history),
그리고 Library(자습)수업을 들었다. 과목 하나하나가 흥미롭게 느껴졌고,
내가 수업을 받게 될 교실을 둘러보며 조금은 어색하지만, 두 학기동안 나와 같이
공부하고 친구가 될 아이들도 만나서 인사를 했다. 처음 1~2주간의 적응기간은
지금 돌이켜봐도 생생할 정도로 흥분되고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간이었다.
또, 따돌리거나 아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내 걱정과는 달리,
나와 내가 가진 물건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며 내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들과,
초기 학업 적응과 수업 이해도를 높여주기 위해 애쓰셨던 그곳 선생님들께는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에 대한 이들의 관심에 힘입어, 나는 학교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리라 마음먹었고,
미리 생각했던 농구부에도 가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운동이 Season제로
운영되는 미국학교에서, 특히 Class C에 해당되는 소규모 학교였던 Chester High School은
여름~가을은 미식축구, 겨울엔 농구, 봄에는 트랙&필드(육상)반을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Sports Activity를 하고 있었고,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시절인 9월이었던 그 때는
미식축구부 외에는 들어갈 수 있는 운동부가 없었다. 해보기는 커녕, TV로 본 적도 거의 없었고,
기본적인 규칙도 몰랐던 나였지만, 평소 운동엔 자신 있었고, 뭐든지 도전하고자 하는 맘이 컸기 때문에
미식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간단한 메디컬 테스트를 통해 미식축구부에 정식 입단했는데,
처음에는 보호구를 착용하긴 했지만 (입단 후, 이 보호장비들을 받는 데만 3주가 걸렸었다.)
몸을 부딪치면서 하는 미식축구가 너무 거칠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했고 훈련도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주자는 맘으로 이를 악물고 훈련을 소화해냈다.
부원들과 친해지고 전술이나 규칙 등, 미식축구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는 조금씩 미식축구의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100m를 11초대에 주파할 정도로 스피드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Junior Varsity(JV)팀의 Running Back으로 팀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후에 미식축구부가 학교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내가 미식축구로 인해 학교에서 받게 된 Spotlight를 생각하면
지금 돌이켜봐도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김주찬의 교환학생 수기 3 - 초반 적응의 문제

이렇듯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느껴졌던 내 초기 적응기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Host Family와의 생활이다. 의사소통의 한계에서 오는 오해나 어려움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그 외 문화적 차이나 생활방식과 태도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들 또한, Host Family와 내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었다.
한 번은 호스트패밀리가 집을 비울 동안 나에게 개를 돌 볼 것을 부탁했었는데,
개가 그만 실내에서 배설을 했다.
나는 개똥을 다 치우고 나서 문제를 떠벌리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Host Mother인
Jennifer가 아무 일도 없었냐는 질문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얼버무렸는데,
후에 그녀가 내가 개똥을 치운 흔적을 발견하고는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하고도,
내게 왜 (아무일도 없었다고)거짓말을 했냐고 꾸짖었던 기억이 난다.
또, 아기인 내 Host Brother Alton과 놀아주다가 사고로 Alton이 울게 되었을 땐,
그들이 와서 “Thomas, What happened?” 이라고 단호하게 물었다.
나는 그것이 나를 꾸짖는 줄 알았는데, 내 잘못을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단순히 어떻게 해서 아이가 울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미국의 부모님은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사태의 결과여부를 떠나서 그 일이 일어난
과정을 더 중요시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한국에 있을 때는 집안에서 부모님께 응석만 부리며 자라온 내게 집안일에 대한
‘책임’은 꽤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한 번은, Richard와 Jennifer가 교회일 때문에
나는 Patty의 집에 머물면서 또 개를 돌봐야 했는데, 개를 돌보는 데에 익숙하지 않는
나를 야속하리만큼 도와주지 않고, 내가 깜빡 잠들어 개의 용변을 위해 산책시켜야 할
시간을 잊었을 때, Patty는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날 깨워주지 않고 후에 내게 뒤처리를
시켰을 땐, 정말 미국사회에서 ‘책임’과 임무라는 것은 아이이든 어른이든 칼같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이럴 땐, 문화의 차이를 절감하면서, 일을 깜빡 하고 넘어갔을 때
잔소리하시면서도 대신 정리해 주시고, 해야 할 일을 조금 미뤄도 봐주셨던 부모님의 슬하가
그립기도 했다.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약속한 일 외에
Host parents가 내게 부탁했던 집안일들은, 역시나 제 부모가 아닌지라 왠지 불공평하게
느껴지거나 부려먹는다(?)는 억울한 기분도 들었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친부모님께 하소연 할 때,
부모님은 얹혀 사는 만큼, 그들의 부탁에 무조건 순응하고 웬만하면 시키는 일을 모두 군소리 없이
하라고 날 다그치셨다.
그러나, 어느 날 가축을 도축하고 나서 치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 잠시 쉬고 있었던 내게,
Host Father인 Richard에게 우리가 (시키는 일이) 내키지 않는 다면 Host Family를 바꿔도 된다는
극단적인 말을 듣고 난 후, 그들과의 관계나 대화에도 소극적이고 조심스럽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후에 그들로부터 집안일을 시키는 것은 부려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게 책임감을 심어주고,
가족으로서 함께 일하며 친숙해지는 것을 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역시 어떤 문제든 무조건 덮어놓고
지내는 것보다 대화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집안일을 하면서 드는 어려움들과
생각들을 좀 더 일찍 진솔하게 그들과 Coordinator아주머니께 터놓고 얘기했더라면 훨씬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후회도 했다. 이렇듯 처음엔 적응기간이라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려로 드러나지 않다가 한 달 쯤 이후부터 가시화된 Host Family와의 마찰은 호스트 패밀리를 바꿀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러나, 날 Montana, 그 중에서도 Chester라는 별 볼 것도 없고 특별한 일도 없는
작은 마을에 계속 머무르게 한 건 내게 최고의 기억을 선사한 학교 생활, 그리고 친구들이었다.